(인터뷰) 조현주 박사


(인터뷰) 조현주 박사

 

– 끝없는 열정으로 달린 인생

–  27년간 수의 연구관 근무

– 300불 들고 시작한 캐나다 생활

 

Jan. 19, 2018

글로벌코리언포스트

 

“항상 준비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준비를 안 하면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못 잡는다.” 고 자신의 인생의 좌우명에 대해 밝힌 조현주 박사를 글로벌코리언포스트가 만났다.

 

조 박사는 전 캘거리 한인노인회 회장이자 전 캐나다 한인노인회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조 박사는 캐나다에 1970년 8월 25일에 단지 300불을 들고 왔지만 지난 47년간 캐나다 생활에서 경제적이든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해 행운이 따르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와 인연을 맺게 된 그의 배경은 이렇다.

 

조 박사는1964년에 경상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66년에 수의학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1970년까지 한국정부 가축위생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67-68년에 뉴질랜드 정부의 Wallaceville Animal Research Centre에서 방문 과학자 생활을 하였는데 거기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당시 뉴질랜드의 수의 연구소에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캐나다 연구가와 같이 근무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분의 추천으로 1970년에 캐나다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구엘프 수의과 대학에서는 그에게 석사 학위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처음에 말했지만 6개월 뒤에는 박사학위를 공부해도 좋다고 해서 2년 8개월 뒤인 1973년에 밍크 알류산병(aleutian mink disease)에 대한 논문 발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캘거리에 위치한 연방정부의 수의 연구소에 취직되면서 캘거리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후 캘거리에서 1973-2000까지 27년간  CFIA, Animal Diseases Research Institut에서 수의 연구관으로  진전병(Scrapie)/광우병 연구 전문가로 근무했다.

 

퇴직 후 조 박사는 캘거리한인노인회 회장으로도 봉사했고 또한 2010.10.5에는 캘거리한인회관 확장이전에 주도적 역할을 한 공로로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또, 2012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다이아몬드 쥬빌리 메달을 수상했다.

 

캐나다 정부의 그랜트를 받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조 박사는 지난 2008-2017년까지 총 47번의 정부 그랜트 신청 중 36번은 승인을 받았고 11번 만 거절 당했다며 캘거리의 한인회, 라이온스 클럽, 노인회 등 지난 7년간 그가 받은 그랜트 금액은 총 1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몬트리올이 지난 50년간 그랜트를 못 받았지만 2016년에 사상 처음으로 두 개의 그랜트를 받도록 해 주었다며 정부 그랜트를 많이 받도록 한인 단체들을 도와 준 일이 보람된 일이라고 밝혔다.

 

동물을 좋아하고 수의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그의 어려운 가정형편이 연유가 되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대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자 당시 진주 농과대학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하면 학비가 면제된다는 소식에 응시했는데 1등을 차지하게 되면서 4년간 학비를 전액 면제 받았다.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좋았다고 느낀 점에 대해서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정부가 최소한 $15,000이상 책임을 지는 등 복지 혜택이 잘 되어 있어서 좋고 또 자신은 그동안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고 또한 힘든 일 없이 편하게 살았다고 밝혔다.

 

참고로 조 박사는 캐나다 대학 유학생 시절에도 연구 생활로 연 4-5만 불을 받았고 또 퇴직 당시 2000년에 받은 연봉은 약 9만 불로 경제적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캐나다 연구소에서 동물 질병 연구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캐나다 농민들에게 이로운 점을 줄 수 있는 점을 들면서 별 어려움 없이 리서치 등 생각하는 대로 잘 되었다고 말했다.

 

연방 공무원 27년 경력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방 공무원은 행정 공무원과 연구 공무원이 있다.  리서치 하는데 관심이 많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연구가 인류에 큰 보람이 된다는 각오가 없으면 연구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9시부터 5시까지가 아니라 9시부터 밤 12시까지 평생 연구를 해야 되고 잠자는 동안에도 연구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만 연구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연구를 많이 하다 보면 건강을 해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연구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건강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조 박사는 한인타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하늘이 돌봐 주셔서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하며 전 캐나다시니어총연합회 전 회장으로서 앞으로 노인회에 바라는 점은 정부 그랜트를 받도록 도와줄 생각이고 또한 자신이 창설한 캘거리 한인장학재단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상을 떠날 때 남은 재산을 자식에게 모두 물려주지 말고 1%는 캘거리한인장학재단 등 한인 단체에 남기고 죽자고 사람들에게 말한 가운데 조 박사 자신은 6년 전에 남은 재산 10%를 한인장학재단에 바치기로 서명해 몇 명이 그 일에 동참했고 그동안 모인 수십 만불의 기부를 합쳐 장학기금으로 약 45만 불을 모았다고 밝혔다.

 

조 박사는 슬하에 1남2녀의 자녀를 두고있다.  현재 49살의 아들은 약사로, 두 딸 중 큰 딸은 매니지먼트사에서, 작은 딸은 가정의로 일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연구를 너무 몰두하다 보니 가정에 관심을 많이 못 가져서 부인에게 소홀히 대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다.

* 성심껏 인터뷰에 응하여 주신 조현주 박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글로벌코리언포스트| 자스민

ⓒGlobal Korean Post

 

*글로벌코리언포스트의 독자적 인터뷰 내용은 함부로 변경,인용,전제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