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자 칼럼 — 어느 이민 모(母)의 눈물 –


<강한자  칼럼>

  • 어느 이민 () 눈물

 

이전에 토론토 스타 신문의 1면을 두 번 이나 장식한 한 여성이 있었다.  그 여자는 여배우도 아니었고 유명인사도  아니었다.  처음의 사진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미소를 띤 얼굴이었고, 며칠 후 실린 두번 째의 사진은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에 손가락으로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17살의 생일이 지난 지 5일째 되는 날 감옥에서  자살한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던  소년은  11살 되던 해에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그 이후  행운의 여신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이혼 까지 이르게 되었고, 학교 생활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불량스런 옷 차림에 장식용 칼까지 지니고 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하였고, 급기야는 그의 누나의 코를 부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심리 검사를 거치지 않고 구속 수감되며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까지 놓이게 되었다.   심리 상담과 함께 적절한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치료되어야  했지만  정부 기관이 아닌 감옥이나 다름없는 사설 병원으로 보내지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더 더욱 꼬이게 된 것이다.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아닌 독방에 수용되면서 극도로 불안해진 그의 마음이 그의 행동에 반향 되었고, 그로인한  그의 온순치 못한 행동은 더욱 더 그를 정신적인 문제아로 여겨지게 만들어 버렸다.   마침내  그의 문서 처리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에 결국 그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가족이 방문하였을 당시, 그는  아버지한테 ‘사랑하지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며 울음을 참고 일어서 가버렸다고 하는데, 그때 그 상황에서 그 부모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들이 한 말에서, 그의  슬픔과 절망과 원망등이 온갖 서린 애닯은 마음이 전해오는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자기 아들이 정신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죽게 되었는 지 이해가 안 된다는 그 어머니.  가족 과 함께 장미빛 꿈을 안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겠지만, 이혼 후에 혼자서  지켜온 그 소중한  아들까지 잃게 되면서 느꼈을 그 찢어질 것 같은 고통과 아픔!   또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및 관료주의의 타성에 대한 끓어올랐을 마음 속의 분노등은  같은 이민자이자 어머니라는 비슷한 처지에서 그 원통하고 애통한 마음이 전해오지 않을 수 없다.

한인 사회에서도 간혹 부모와 자식간의 언쟁 속에 또는 부모의 잘못된 교육 방식 때문에  자식의 몸에 손을 대어 경찰서로 끌려갔다느니, 부부싸움에 남편이 물건을 던져 부인이 다쳐 옆집에서 신고로 경찰에게 연행되어 격리되었다는 등의  사건들을 들을 때 마다 한국의 고질적인 잘못된 소위 ‘사랑의 매’라고 부르는 훈육 방식과  부모의 태도 또, 남존여비 사상과 유교적인 사상이 물들여진 남녀 간의 문제 의식과 한국의 타성적인 생활 문화의 답습에도 개선의 소지가  있다고 보지만,  반면  자식을 위해 이민을 왔거나 또는  유학을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그들의 마음도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그런 이야기를 접하는 필자의 마음도  상반된 전율하는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가 달라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제도를 몰라서, 차별을 받아서, 행정 제도의 불균형과 불평등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등등, 우리 이민자들은 이 땅을 밟은 이후 부터 무언 지 긴장아닌 긴장 속에서 생활의 끈을 이어가야 하는 연속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에는 누구나 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잘 되기 위한 선택이 잘못된 길로 접어 들었을 때의 당혹감과 좌절감!  그런 선택의 길은 우리의 긴 인생의 여정에서 언제나 놓여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올바르게 추스리는 법도 배워햐 하리라.  어머니나 아버지의 존재는 따사롭고 더할 나위없이 중요하기에 그만큼 가정의 화목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특히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는 더 큰 영향력이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性)’.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라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그 의미 이상의 뜻을 내포하여 참된 행복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질문명과 향락 주의 로 흘러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가정 화목의 근원지가 불분명해져가고 있음에 우려가 된다.

흔들리는 가정 속에서도 굳건히 자식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든든한 모습이나 또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고 올바르게 자란 자녀들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러운 물 속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연꽃 처럼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인간의 승리에 갈채와 존경심을 보내고 싶다.   인생의 끊임없는 희노 애락에 일희일우(一喜一憂 ; 기쁨과 근심이 번갈아 일어남)하지 않는 중용의 자세를 지니도록 노력하며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갈구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은 가 생각한다.

 

*이 칼럼은 2011년 12월에 작성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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