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자 칼럼 – ‘너 부터’가 아닌 ‘나 부터’로의 시작


 

<강한자 칼럼>

‘너 부터’가 아닌 ‘나 부터’로의 시작

 

매년 새해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에는 새로운 각오와 열정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누구나 원한다.  인간이 가진 욕망에서 대표적인 다섯가지 욕망 즉 오욕이라고 해서 수면욕, 물질욕, 명예욕, 성욕, 식욕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물질욕과 명예욕이 좋은 방향으로 갔을 때에는 자신과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 및 조직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또한 자신을 추락시키는가 하면 파멸까지 이르게 만들 수 있다.

공직자든 성직자든 영리 단체든 비영리단체든 간에 주어진 지위에서 또 주어진 권력을 활용하여 공적으로 그 단체를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의 사심을 먼저 채우고자 할 때에 그 양심은 이미 순수한 것이 아니기에 그 단체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잡음을 양산할 수 밖에 없다.   실로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되는데 정말 공과 사를 어떤 식으로 구별해야 하는 지는 아마도 자신의 매 행동에 있어서 자신의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 양심이 이미 찌그러지고 엎어지고 깨지고 더러워진 양심이라면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오히려 합리화시키고자 사실을 왜곡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더구나 현대에는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SNS 및 매스미디어등을 통해 때로는 보다 더 쉽사리 왜곡된 사실을 버젓이 사실로 둔갑시키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 수도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고 한다.  사실 지식이 많은 자가 지혜로와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지혜는 단순히 ‘앎’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노력하지 않은 채 단순히 지식을 위한 지식자는 고매한 지혜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저절로 깨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고통과 열정과 노력 속에서 우주와 자연의 진리와 순수성을 통해서 얻은 마음과 정신의 꾸준한 배양 속에서 조금씩 열려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각자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을 순화시키고 정화시키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이 있을 때 자신의 양심을 찌그러뜨리지 않고 엎어뜨리지 않고 깨뜨려지지 않도록 하면서 가능한 순수에 가깝게 지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양심 속에서 바라보는 영혼은 혼탁되고 혼동된 삶 속에서 거짓과 부정과 사악(邪惡)에 덜 미혹된 채 사실과 진실 및 진리 또는 정의 등을 식별 또는 판별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될 것이다.  미혹되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때로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미혹되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양심의 얼룩이 작아질수록 사회문제, 환경문제, 인간 사회의 갈등, 각종 부조리 및 부정부패, 가정 불화등의 얼룩 또한 더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단순히 ‘너 부터’가 아닌 ‘나 부터’로 시작하여 모범을 보이는 행동 속에서 전파력을 갖는 것이 오늘을 사는 복잡한 시대에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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