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나옥녀, 한국관 사장

나옥녀 사장 (2015. 7.27) / Credit: Global Korean Post (globalkorean.ca)


 

** ‘포커스’는 직접 인터뷰를 통해 한인 사회에서 성공 및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의 삶의 자세와 비즈니스 노하우, 조언 등을 전달하고자 ‘글로벌 코리언 포스트’에서 특별히 취재한 코너입니다.

 

[포커스] 나옥녀 한국관 사장

 

2015.10.22

Global Korean Post

 

 

7월에 블루어 한인타운의 한 음식점 앞에 때 아닌 코스모스가 만발하였다.  한국에서는 가을에나 볼 수 있는 코스모스가 ‘한국관’ 주인의 정성에 힘입어 활짝 피어서 마치 벽을 이루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국관’ 입구를 비롯하여 실내에도 주인이 가꾼 식물들이 화사하게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번 포커스 인터뷰는 블루어의 한인타운에서 무려 37년 동안 ‘한국관’을 경영해 왔고 한인사회는 물론 캐나다 주류 사회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전 탤런트 나옥녀씨를 만났다.

 

자신은 인터뷰를 잘 안 한다고 말하면서, 필자와의 인터뷰에는 응하기로 하여 실제 만나기로 한 날은 마침 7월 27일 정전협정의 날 저녁 시간이었다.  당일 낮 기온이 30도를 윗도는 매우 뜨거운 날씨였다.  저녁에 한국관을 방문하였을 때 나옥녀 사장의 푸짐한 인심과 함께 제공된 냉면이 마침 당일 오전 메도우베일 묘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졌던 온 몸의 열기를 싹 가시게 만들었다.

 

나옥녀씨는 전 KBS 9기생 탤런트로 한국에서 ‘여로’ 방송에도 출연한 바 있다. 대표작은 한국의 최초 여가수인 ‘윤심덕’에서 주연을 맡았다. 나옥녀씨 이후 ‘윤심덕’ 역에는 20년 뒤에 장미희씨가 주연을 맡았다.  신구, 고 문호장씨와 함께 10년간 맥을 이루어 실화극장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윤심덕씨 역을 할 때는 칼러 TV가 도입되어 테스트를 할 당시라 촬영된 드라마도 반은 흑백, 반은 칼러로 나오는 시절이었다.

탤런트를 하게 된 동기는 모든 가족들이 약사이고 외가 친척도 의사라 본인도 약사의 길을 가려고 하던 중 우연히 사촌 언니의 권유에 의해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배우가 없었던 때라 성우 출신들이 대사가 되는 관계로 성우들이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부자, 사미자, 김혜자씨 등도 성우 출신이라고 한다.  나옥녀씨의 동기생으로는 백윤식, 주현씨 이다. 나옥녀씨는 한국 방송의 초창기부터 거쳐온 역사 현장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도에 방송국의 선배 언니의 중매로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37세의 나이에 4월에 캐나다로 오게 되었는데 이후 나옥녀씨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고생 없이 자란 부잣집 셋째 딸이 이민 와서도 여전히 순탄한 삶을 영위하였는데, 15년이 지난 어느 날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남편이 철떡 같이 믿고 호텔 운영을 맡겼던 인도인 매니저의 농간에 속아 호텔은 물론 집과 남편이 결혼 전부터 그의 가족과 같이 운영해왔던 ‘한국관’까지 모두 다 통째로 날리게 되었다.

갑자기 5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나옥녀씨가 운영하던 그리스 레스토랑도 넘기게 되었고, 모든 것이 무너져 좌절할 무렵에 다행히 사업 모기지를 얻었던 한국관 건너편에 위치한 외환은행 블루어점에서 나옥녀씨에게 한국관의 열쇠를 다시 넘겨주게 되면서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매달 $14,500씩 내야 하는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 일수 및 각종 대출 등 안 받은 것이 없다고 한다.  자신을 믿고 밀어준 은행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신의를 지키기 위해 긴장 속에 바쁘게 살았고, 한국에는 방문할 겨를도 없고 경제적인 여간 상 현재까지 한국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력을 다해 재기를 꾀한 결과 이제 3백만 불 이상 갚았고 아직도 빚을 갚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관의 정갈하고 깔끔한 맛의 비결에 대해 묻자,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육수나 모든 음식에는 나옥녀 사장의 비법이 스며들어 있다고 한다.  냉면도 단순히 기계로 뽑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직원 2명이 직접 손으로 치댄 후 기계로 면을 뽑기 때문에 냉면 맛이 틀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재의 맛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 운영할 당시에는 서점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라 한국의 방송국 선배들에게 책이란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여 책을 통해 배웠고 또 자신이 과거에 먹었던 맛을 되살리면서 현재의 맛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간혹 손님이 음식을 남겼을 때는 20여명의 직원들 앞에서 직접 손님이 남기고 간 음식의 맛을 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직원들에게 보완토록 지시하고 또 사람이 바뀔 때에는 한 달간 직접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그녀가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느낀 바에 의하면, 실제 한식 문화의 보급과 관련해서 언급하자면, 한국 음식은 타 음식과 달리 반찬이 무료로 제공되는 관계로 절대 이윤이 남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한식당이 수지 타산과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하였다.  캐나다의 기후의 여건 상 자체 생산은 7,8.9월 석 달만 가능하고 다른 달은 수입을 하는 관계로 1월 같은 경우에는 고깃 값보다 야채 값이 더 비싸게 든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인의 경우에는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다행히 외국 손님들이 많아서 외국인의 경우 두 번째 반찬을 요구할 때는 충분한 설명과 함께 유료로 반찬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한다.

다른 곳에서 한국 음식을 맥도널드의 햄버거 값보다 저렴하게 값을 제공하는 것은 한국 음식 문화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운영점도 망하는 길이라며 많은 한식당들이 크게 문을 열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들면서 한국 음식점이 성공하려면 음식 값에 인건비, 반찬 값 등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나 사장은 말한다.

 

비즈니스의 노하우에 대해 물으니 정직과 성실, 종업원 관리라고 선뜻 말한다. “종업원은 자식과 같이 애정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은 37년간 일한 주방장 2명, 웨이트레스 등이 큰 자산이다.”  또, 비즈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종업원 관리’를 들었다.

 

주변에서 체인점을 내라는 성화와 끈질긴 요구도 있었지만 다 거절하고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한인 상가의 자존심을 지키며 ‘한국관’을 37년간 지키고 있다. 실내에는 1986년 5월 14일자 글로브 앤 메일 신문에 실렸던 기사가 액자 속에 담겨져 있었고, 그동안 방문한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의 사진이 한쪽 벽면에는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한국관에는 성룡, 주윤발, 샌드라 오, 김연아 등 각계의 유명인사를 비롯하여 한국의 탤런트들도 토론토에 오면 꼭 들르는 명소가 되었고 유명한 캐나다인 요리사와 미국에서도 추천하는 음식점으로 그 맛을 지키고 있다.

 

저녁 7시경에 출근하여 다음 날 새벽 4-5시까지 일한 후 집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직접 재배하는 꽃들에게 물을 주고 또 꽃들을 바라보고 앉아서 자신과 대화를 하는 시간에는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낀다는 나옥녀씨는 이해인 수녀님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아침 저녁으로 되새기면서 모든 것과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도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런 노력이 깃들어서인지 칠순을 맞이한 나이와 그 동안 심신으로 고생한 흔적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무척 밝아 보였다.

 

모든 손님들의 80-90%가 단골이 될 정도로 실내 분위기의 편안함과 나옥녀 사장의 친근한 인정에 이끌려 어렸을 때부터 온 손님이 자라서 손주들과 같이 들르는가 하면, 나 사장에게 ‘엄마’라고 서슴없이 부르며 들어오는 손님들과의 끈끈한 연대 속에서 손님들과도 가족같이 지낸다고 말한다.

 

저녁 7시경에 출근하여 새벽 4-5시까지 일하고 취침하는 시간은 아침 8시경.  그것도 비상 시에는 잠을 제대로 청할 수도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하루에 식사는 밤 11시에 한끼만 먹고 연한 원두커피는 하루에 6-7잔 정도 마신다는 말에 놀라웠다.  그래서 나옥녀씨에게 건강 비결을 물으니, “항상 긴장하면서 살다 보니까 건강한 것 같다.”고 말한다. “표정관리는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나 사장의 얼굴에는 고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마음으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성공이란 경제적인 성공이 아니라 마음으로 성공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나옥녀 사장의 참된 마음이 ‘한국관’ 실내.외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식물들에게도 이미 전달된 것으로 보여진다.

ⓒ Global Korean Post | 자스민 강






Previous article[포커스] 구자선, 평화식품 사장
Next article평화의 소녀상, 토론토 한인회관 앞에 안착하다